모던K활약상

[비바100] 청각·발달장애인 위해 이층버스 탄 아이돌 대부 ModernK | 2018-07-27

[비바100] 청각·발달장애인 위해 이층버스 탄 아이돌 대부

전국이 펄펄 끓던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모던K실용음악학원 리허설센터 앞은 고요했다. 수은주가 35도를 넘자 거리에 인적조차 드물었다. 이 더위에 누가 공연을 보러 올까? 걱정은 기우였다. 오후 6시가 넘어가자 작은 공연장은  관객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밴드 이층버스의 ‘바닥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이다.  

 

헌데 관객의 구성도, 외양도 심상치 않다. 가족 단위의 관객이 다수였고 몇몇 어린이들과 학생들은 한쪽 귀에 귀걸이형 이어폰을 꽂았다. 함께 공연을 관람하러 온 삼성소리샘 복지관 차용옥 팀장은 “이어폰처럼 생긴 기기가 인공와우”라고 귀띔했다. 4~5살 어린이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 어린이들이 가족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바닥공연’이라는 공연명처럼 의자가 아니라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는 게 인상적이다. 몇몇 가족들은 간식을 나눠먹기도 했다. 마치 소풍 나온 것 마냥 훈훈한 분위기 속 잔잔하게 음악이 깔리기 시작했다.

 

 

◇‘마법의 성’ 색소폰 연주에 관객 눈물  

공연의 출발을 알리는 인트로 음악이 흐르자 시끌벅적하던 장내가 차분해졌다. 메인 보컬 윤립(19) 씨의 음색은 매력적이었다. 초창기 아이유를 떠올리게 하는 감성적이면서 몽환적인 목소리다. 

 

청각장애인들에게도 윤씨의 목소리가 전달될까. 차용옥 팀장은 “보통 사람의 가청 범위가 2만Hz(헤르츠) 정도인데 인공와우를 착용한 청각장애인은 최대 2000Hz(헤르츠) 대역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소음이 없는 곳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하거나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친구 사이인 김혜성(14) 양과 김민서(14) 양도 귀를 쫑긋 세우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연신 박수를 쳤다.  

 

작은 사고도 있었다. 두 번째 곡인 ‘취연’을 부르던 중 전자피아노의 건전지가 나가버렸다. 피아노를 연주하던 이상인(40) 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 여러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우리 건전지를 갈아 끼우는 동안 윤립 양의 노래를 들어볼까요?” 밴드 리더 김형규 씨는 탁월한 진행솜씨로 피아노 공백을 무마했다. 다소 경직됐던 멤버들은 ‘건전지 사고’를 계기로 긴장이 확 풀린 모습이었다. 

윤립의 노래가 잊고 있었던 감성을 끄집어냈다면 남성 보컬 이창우(22) 씨의 ‘에너제틱’은 공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씨는 기타 세션으로 참여한 워너원의 히트곡 ‘에너제틱’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했다. 가사조차 알기 어려웠던 빠른 비트의 노래는 이씨의 편곡을 통해 세미 팝발라드로 변신했다. 

 

이어 이층버스의 신곡 ‘나 안취했다고’를 부르기 시작하자 학부형 관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술이 들어간다 쭉 쭉쭉 쭉쭉” 매일 자녀들과 씨름하던 부모들은 현실적인 가사에 연신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2015년 방송된 Mnet ‘쇼미더머니’ 시즌4 우승자 베이식은 게스트로 참여했다. 방송 당시 아내와 아들을 둔 회사원 래퍼로 화제를 모은 베이식은 관객들에게 “제가 요즘 고민이 있습니다. 둘째를 낳아야 할까요? 저희 부부의 최대 화두입니다”라는 질문을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베이식은 자신이 피처링한 윤립씨의 싱글 ‘장마’와 히트곡 ‘좋은날’ ‘스탠드업’으로 공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뒷좌석에 앉은 한 어르신은 “저 친구 제법 잘하네”라고 칭찬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송윤호(14) 군과의 협연이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송군은 서울시 어린이병원 소속 레인보우오케스트라 소속이다. 2년 6개월 가량 색소폰을 배웠는데 출중한 기량을 자랑한다.  

무대에 선 송군은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관객에게 인사말을 할 순서가 되자 “차렷, 열중쉬엇, 차렷”을 외치더니 90도로 배꼽인사를 했다.  

 

 

우렁찬 색소폰 소리와 함께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이 울려 퍼졌다. 이 시간은 오롯이 송군이 무대의 지휘자였다.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이” 후렴구에 이르자 송군은 연주를 멈추고 두 팔을 들어 날갯짓을 했다. 몇몇 학부형은 눈물을 떨궜다.   

 

 

◇아이돌 대부와 이층버스 탑승한 의리의 뮤지션들  

 

이층버스의 ‘바닥공연’은 발달장애인, 청각장애인을 돕기 위한 공연으로 4회째 이어지고 있다. 밴드는 공연 수익금을 기부했다. 지난 달 20일에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삼성소리샘복지관에 수익금을 기부해 2명의 환우가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이날 공연의 주요관객은 소리샘복지관의 환우들이었다.

 

 
 

이층버스를 이끄는 리더 김형규 씨는 마마무 소속사 RBW 엔터테인먼트의 이사 겸 모던K실용음악학원의 대표다. 비스트, 포미닛, 에이핑크, 비투비, 마마무, 펜타곤, 마스, (여자)아이들 등 수많은 아이돌 스타가 그의 손을 거쳐 데뷔했다. 그야말로 아이돌의 대부인 셈이다. 하지만 모두가 화려한 무대 위를 꿈꾸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이층버스의 공연은 가장 낮은 곳인 ‘바닥’을 향한다.

“조카가 발달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발달장애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됐어요. 장애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결국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이들을 돕기로 했죠.”(김형규)   

보컬 윤립 씨와 이창우 씨도 김씨의 제자다. 원래 아이돌 가수를 꿈꿨던 윤씨는 집안의 반대로 보컬로 전향하고 김씨 밑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윤씨는 “사촌오빠도 장애가 있다”며 “대표님께서 밴드 멤버를 구성할 때 바로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김씨가 출강하는 동아방송대학교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역시 좋은 취지의 밴드가 있다는 김씨의 제안에 이층버스에 탑승했다. 그는 “누군가를 돕고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뜻 깊었다”며 “음악이 일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피아노의 이상인 씨와 베이스의 박동혁(35) 씨는 각각 모던K실용음악학원 분당캠퍼스와 영통캠퍼스의 원장이다. 드럼의 박성룡(38)씨는 분당캠퍼스 강사다. 총괄 감독인 권석홍(49) 씨는 RBW이사 겸 프로듀서다. 가요계에서 내로라하는 뮤지션인 이들 모두 이층버스의 취지에 공감해 ‘바닥공연’에 나섰다. 박성룡 씨는 “밥만 주면 뭐든지 다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의미있는 공연인지 몰랐다”며 웃었다.

밴드의 구성원들은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다. 막내 윤립 씨와 맏형 권석홍 씨는 무려 30년이나 나이 차이가 난다. 이창우 씨는 “가끔 형님들이 아재개그를 할 때마다 세대 차를 느낀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층버스의 ‘바닥공연’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10월 18일에는 서울시 어린이 병원에서 송윤호 군이 소속된 레인보우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친다. 이층버스는 청각장애인 100명에게 인공와우수술비를 지원하겠다는 목표로 ‘바닥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아이들이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 음악을 즐기고 감동받고 눈물 흘리는 모습에 인간적인 기쁨과 행복을 느꼈어요.”(윤립) 

 

“관객의 웃음보다 눈물이 더 와닿았어요.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을 케어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육아에 지친 부모님들을 위한 힐링 공연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두 시간 남짓 아무 생각없이 웃고 눈물 흘리며 위로받을 수 있는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김형규)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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